-56세 김대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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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 김수로왕의 55세손 부 김준손과 모 숙부인 전주이씨, 제주고씨, 남원양씨 슬하에 4남 중 장자로서, 배 숙인 벽진이씨(碧珍李氏) 슬하에 2남(김성(金鋮), 김생(金鉎)을 두었다.
- 1479년(성종 10년)
- 1551년(명종 6년)
- 조선 전기 문신이며, 정언, 칠원현감, 전적등을 역임
- 자는 천우(天佑), 호는 삼족당(三足堂)이다. 조광조, 조식 등과 친교를 맺었고, 정여창의 문인(聞人)이었다. 1498년(연산군 4년) 무오사화 때 부 준손과 함께 호남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(중종 1년) 풀려나왔다. 1507년 진사가 되고, 1518년 행의유일(行誼遺逸)로 전생서직장(典牲署直長)에 서용되었으나 사직하고 고향인 청도로 돌아갔다.
1519년 현량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, 호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, 정언, 칠원현감(漆原縣監)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. 1545년(인종 1년) 현량과가 복과되면서 전적에 재서용되어 상경하던 도중에 병이 나 향리로 돌아가 죽었다. 그는 현량과 천목(薦目)에서 기우(器宇)가 뛰어나고 견식(見識)이 명민(明敏)하다“는 평가를 받았다. 청도 자계서원(紫溪書院). 선암사(仙巖祠)에 제향되었다. 저서로는 ”탁영연보(濯纓年譜)“가 있다.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