-54세 김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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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 김수로왕의 53세손인 부 김극일(金克一)과 모 한성부윤 이간의 딸 슬하 6남중 차남으로서 슬하에 자 준손, 기손, 일손을 두었음.
- 서기 1410년(태종 10) 8월 1일
- 서기 1483년(성종 14) 9월 11일 향년 74세/묘 군상북수야산 건좌
- 생원시를 거쳐, 서기 1441년(세종 23)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, 감찰. 김천 도찰방, 예조좌랑이 되었다.
일찍이 “예부운서(禮部韻書)”를 찬했고, 1451년(문종 1) 평안도도사를 거쳐 고령현감 등을 역임하였다.
서기 1455년(세조 1) 좌랑으로서 좌익원종공신(佐翼原從功臣) 3등에 책록되고, 곧 의금부진무를 거쳐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였다.
성종 초에 집의에 올랐다가 퇴직하였다. 이조참판(吏曹參判)에 추증되었다. 성품이 단아 청렴하고 명리에 초연하였으며, 부 극일, 자 준손, 기손, 일손, 손 대유가 모두 문명을 떨쳤다. 극일, 일손, 대유는 3현으로 칭송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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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 김수로왕의 54세손인 부 김맹의 3남 중 장남으로서 슬하에 4남 대유(大有)(3현), 대장(大壯)(일손 자로 출계), 대축(大畜), 대아(大雅)를 두었음.
- 경태 5년 단종 갑술
- 정묘 12월 7일 향년 54세/묘 군북차읍면 토평빈산 자좌
- 홍문관 직제학 역임, 무오사화 때 부자 호남 유배, 중종 반정 후 충훈대위 봉 연천군(忠勳大圍 封 燕川君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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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 김수로왕의 55세손 부 김준손의 4남 중 4자로서 슬하에 3남(약(鑰), 익(釴), 굉(鍠)을 두었음. 후손은 약(鑰)(자 방원(方遠), 호 계암(溪菴), 57세손
- 치진(致璡)-인경(仁慶)-애복(愛福)-영남(英南)-천수(天守), 곤수(坤守), 천계(天啓), 태수(泰守)로 세속됨.
- 서기1498 -1576년 2월 14년 졸 78세/묘 창녕 반장우 청도빈산선영좌변 임좌
- 1523년 진사, 1531년 문과 급제
- 부 김준손, 형제와 함께 무오사화 때 호남유배, 중종반정 후 밀양으로 환거, 세불출일사경학오락 평생(世不出日事經學娛樂 平生)


